August 25, 2015

 

[1]

강해지고 싶다는 욕망은 자연스럽다. 그러나, 동기가 많은 사람들과 친구가 되고, 많은 사람을 돕는데 있지 않다면, 추구하고 성취할 있는 강함은 제한된다.


[2]

학계에서의 경쟁 상대는, 일차적으로는 전세계의 동료들, Finance PhD 학생들과 교수들이고, 궁극적으로는 자신이다. 경쟁의 과정을 통해서 나를 성장시키고, 동료들을 돕고, 세상을 돕는다.

 

[3]

일상의 중심을 축구에 둔다. 수업과 연구 진행 과정에서 빈번히 생기는 조급을 다스리는데 (개인적으로) 축구만한 것이 없다. 축구는 - 힘과 스피드의 경기가 아닌 - 균형의 경기이다. 상대의 균형을 빼앗으면 이기고, 그렇지 못하면 진다. 그를 위해 필요한 것이 평정이다. 축구를 통해 평정의 경험/감각을 유지하는 것이, 수업과 연구 진행 과정에서의 평정 유지에 도움이 된다.

 

[4]

그래서 여름 내내, 거의 매일 공을 찼다. 피부는 검게 그을렸고, 근육은 조각조각 선명하다. 무엇보다 하복부 근육이 놀랍다. 20 이후, 운동을 거른 적이 없고, 20 후반부터는 음주 빈도도 크게 줄였지만, 그래도 가끔은 마시는 때문에 하복부 근육을 확인하기 힘들었다. 하복부 근육은 상복부 근육에 비해 발달시키기 어렵고, 만든다고 하더라도, 마지막까지 남는 피하지방을 유산소 운동으로 완전 연소시키기 전에는, 육안으로 확인되지 않는다.

 

[4]

순간 순간의 결심들은 축적과 정제의 과정을 거쳐 신념이 된다. 결심을 신념으로 전환시키는 축적과 정제의 과정, 구조화 (framing) 과정 가장 효과적인 수단은적는 이다. 적어두지 않은 결심은 가치 불문하고 사라진다.

 

[5]

학기 초반이니 다짐해 둔다. 준비 (예습) 되지 않은 수업은 들어가지 않는 것만 못하다. 수업에서 처음 듣는 내용이 있어선 된다. 수업은 새로운 것을 배우는 시간이 아니다. 이미 이해한 것들의 내용과 방향을 확인하고, 혼자 해결이 되는 부분들을 해결하는 시간이다. 수업은 학습의 시작이 아닌 끝이다.

 

[6]

복습 역시 중요하다. 해당 수업 교수의 주안점을 파악한 학습할 있다. 예습에 비해, 시간 대비 효율이 높다. 그러나, 추후 수강해야 하는 연관 과목 교수의 주안점, 그리고 정작 본인의 미래 연구에 중요할 있는 내용을 놓치게 위험이 공존한다. 대부분의 응용과목에서 교수의 주안점은 교수 본인의 연구와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예습 없이 복습만 하면, 학점 취득은 효율적일 있지만, 정작 본인 연구에 필요한 학습의 효율이 떨어질 있다.

 

 

 

August 7, 2015

 

[1]

예수님만 알고, 성서만 읽으면서, 예수님을 믿고, 성서를 읽으라고 하는 것은 모순이다. 모든 것은 상대적이다. 맛없는 음식을 먹어보지 못한 이가, 맛있는 음식의 맛있는지 없다. 마찬가지로, 악을 이해하지 못하는 이가 선을 이해할 없다. 선을 이해하고 행한다는 것은, 선만 알고, 선만 행한다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악을 이해하고, 악을 행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선을 이해하고, 선을 행하는 것을 뜻한다. 전자는 현실 외면 혹은 도피, 후자는 용기와 극복에 해당한다. 전자는 끝없는 불안과 번뇌, 후자는 평온을 의미한다.

 

더하여, 성서를 보다 효과적으로 소화하기 위해서, 성서를 멀리할 필요가 있다. 유사 이래 가장 많은 부수가 판매된 성서이다. 성서를 읽은 많은 사람들이 천년 전의 그것이 아닌, 당대의 상황에 부합하는 해석과 적용 예를 제공한다. 성서의 메시지가 성서 외의 책들이 담고 있는 메시지와 다르지 않다.

 

또한, 성서가 전하는 메시지와 불경, 코란 등에서 전하는 메시지가 틀에서 다르지 않다. 일신교 vs. 다신교 구도 등이 대표하는 배타성과, 그에 따른 폭력성과 잔인함의 내용과 정도가 다를 뿐이다. 예수님은 신자를 제외한 사람들을 배척하거나, 그들에게 총칼을 겨누라고 적이 없다. 성서는 천년 동안 종교 이해관계자들에 의해수정 가능성을 배제한다면끊임없이 자의적으로 달리 해석되면서, 지극히 인간적인 이해를 반영하는 틀을 제공해 왔다. 역사적으로, 신의 영역보다 인간의 영역이 커졌을 , 그래서 종교의 배타성이 증가했을 , 예외 없이 폭력과 살인이 자행되었다.

 

[2]

최고의 글은 단숨에 써진다. 연구도 일도 마찬가지이다. 이를 위해서는 끊임없는 학습과 단련이 필요하다. 지식, 기교의 부족은, 떠오르는 영감, 사고의 흐름을 써내려 가는 것을 방해하고, 흐름의 단절이 반복되는 사이에 떠올랐던 영감은 사라져 버린다. 창조는 영감에서 출발하지만, 완성하는 것이 지루한 반복 학습과 단련이다.

 

[3]

글을 있는 시간이 며칠 남지 않았다. 학기가 시작한다. 개인적으로는 인생에서 수업만 들을 있는 사치를 누릴 있는 마지막 1년이다. 

 

[4]

이명박, 박근혜의 되는 자산들 하나는 2030대를 제대로 단련시켜 주고 있다는 점이다. 역사적으로 최고의 문명들은 폐허 속에 싹터왔다. 창조적 파괴의 반복을 통해 인류는 진보해 왔다.
 

[5]

같은 맥락에서 재벌이 망하면, 대한민국 경제가 망한다는 것은 거짓이고 오만한 무지이다. 주력 산업 분야 경쟁력 향상을 이유로 국민의 세금을 지원받아, 경쟁력 (실력) 아닌 자본력 () 기반으로 주력 산업에 진입해서, 주력 산업들의 실력 있는 기업들의 성장을 막고, 돈만 취하고 있다. , 국민의 돈으로 국민의 돈을 먹는 것이다. 같은 위험 수익 추구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그들의 로비로 만들어 (정부를 포함하는) 시스템이다. 재벌을 인위적으로 해체하지 않을 것이라면, 최소한 그들이 실력만으로 신생기업들과 경쟁하는, 재벌에게는 불리하지만 신생기업들에게는 유리한, 방향으로 시스템을 재편해야 한다. 경제 성장의 공을 대한민국 국민 개개인들의 역량이 아닌 소수의 재벌가족 몇몇의 것으로 돌리는 그들에게, 대한민국의 젊고 실력 있는 인재들과 계급장 때고 맞짱 뜰 자신이 있는지 묻고 싶다. 우열을 가리자는 것은 물론 아니다. 누가 이기든 지든, 경쟁의 결과가 아닌, 경쟁의 과정 (즉 경쟁이 가능한 시스템) 자체가 국가를 성장시킨다. 자본주의 이론의 토대를 제공한 아담 스미스는 인간의 특권층이 되고자 하는 욕망이 경제 발전에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 단, 전제는 누구든 노력하면 특권층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고도 성장 초기에 결정된 특권층의 지위를 능력 이외의 것으로 세대에 걸쳐 대물림 하는 사회는 자본주의 사회가 아니다.

 

[6]

합리적인 사법제도와 민주주의 시스템을 가정했을 , 인간의 선과 악은 성선설 성악설이 논하는 본성의 문제에서 선택의 문제로 전환된다. 구체적으로, 선을 행함으로써 얻을 있는 불확실한 장기 효용과 그로 인해 유발되는 확실한 단기 비용, 그리고 악을 행함으로써 얻을 있는 확실한 단기 효용과 그로 인해 유발되는 불확실한 장기 비용 간의 선택의 문제로 전환된다.

 

, 시스템 개선을 통해 사회 내의 선과 악의 상대적 비중 조정이 가능해진 것이다. 행정, 입법, 사법 시스템 개선 혹은 운용 개선을 통한, 단기 ( 실행에 따른) 비용과 ( 실행에 따른) 효용의 축소, 장기 ( 실행에 따른) 효용과 ( 실행에 따른) 비용의 확대 불확실성 축소가 이를 가능하게 한다.

 

대의 정치 시스템 내에서, 위와 같은 방향으로, 시스템 시스템 운용을 개선할 있는 이에게 권한을 이임하면 사회 내의 선은 증가, 악은 감소하고, 그렇지 않은 이들에게 권한을 위임하면 사회 내의 선은 감소, 악은 증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