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9 6

 

[1]

중요한 결정을 내릴 ,

확률을 고려하지 않은 적이 없지만, 확률에 의존한 적도 없다.

본질에 닿아 있는 문제라면, 때론 실패 확률이 99% 라도 선택해왔다.

같은 선택은, 때론 끔찍한 실패와 길고 고통스러운 책임의 기간으로 이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식 변경을 고려한 적은 없다.

확률 이론에서와 달리 인생의 support 선택의 결과로서 변한다는 점에서

확률의 문제로 접근하는 것은 합리적이지만, 합리적이지 않다는 판단 때문이다.

 

달리 표현하면, 주어진 조건과 환경을 고정시켜 놓고

선택의 결과를 고려해 선택하는 것은, 확률론에 부합하고 합리적이지만,

주어진 조건과 환경은 선택의 결과로서 변한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합리적이지 않을 있다는 것이다.

 

물론 후자를 택할 경우 (때론 매우 ) 추가 비용 부담 위험이 존재한다.

그래서, 이는 삶의 방식의 문제에 해당한다.

 

개인적으로, 후자의 삶을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실패만큼 컸던 성취의 기억 때문만은 아니다.

과거의 성공 공식이 미래에도 통한다는 보장은 없다.

 

실패 위험을 감수할 의사가 있다면,

본질에 접근하는데 있어 후자가 빠르고 쉽다는 것을

역사에서, 그리고 경험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궁극적으로 A 가고자 한다면 A 직행하는 것이 가장 빠르고 쉽다.

 

[2]

며칠 , 한번 중요한 결정을 내렸다. 최악의 경우 학계에서 퇴출될 있다.

가장의 역할이 더해져서 조금 오래 고민했지만, 결론은 다르지 않았다.

 

선택을 했으니, 남은 것은 책임이다.

결과적으로 다시 크게 돌아가게 되더라도, 삶의 방식을 바꿀 수는 없다.

무엇보다 상황에 따라 삶의 방식을 바꾸는 방식으로

자신의 삶을 있는 방법은 없다.

 

실패하면, 다시 노숙자가 뿐이다.

다른 방식으로 본질을 추구하는 동시에, 가족을 굶기지 않을 자신 또한 있다.

그리고, 타인의 방식으로 성공하면, 성공해도 나의 것이 아니며,

아내와 앞에 당당할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