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아와 정체성에 대한 의문은, 

대게 내게 어떠한 문제가 있음을 자각하여 발생하기 보다는, 

소속되어 있는 사회와 공동체 안에서 나의 위치와 고유한 성향이 타인들의 그것과 상이함을 느낄 때 생긴다.


'일은 무엇이고, 공부는 무엇인가.'

연말 연시이고 하여 지인들의 전화 통화를 하면서, 개인적으로 이와 같은 의문을 다시금 복기하게 되었다.

내년 9월까지 나의 소속과 신분이 애매하다. 삶의 목표와 진행상황에 차질이 생긴 것은 없으나, 

어느 학교의 학생도, 어느 회사의 직원도 아니라면, 추가 설명과 함께 이해를 구해야 하는 상황이 종종 생긴다.


본질을 되집어 본다.

대학 진학의 목표가 취업이라면, 일은 돈을 버는 것이고, 공부는 돈을 벌기 위한 준비인가?

하지만, 대학 진학 후, 학자의 길을 걷는다 하면 어찌 되는가.

학자는 공부를 함으로서 돈을 버니 그것은 일이라 해야 하나 공부라 해야 하나?

또한, 9시간을 남의 지식을 공부하고 1시간 동안 정리하고 조금의 창의성을 더하는 것이 일과인 

컨설팅업체나 기업의 전략기획팀에서 근무하는 경우, 

일은 무엇이고 공부는 무엇이라 정의해야 하는가. 

지식 노동의 시대에 공부와 일이 다른 것이 아니나, '공부'라는 단어에서 공감하는 '수동성'과, 

이름보다 직함으로 대화를 시작하는 것이 서로 편리한 사회의 구조적 특성에 가져다 준 의문이겠거니 생각한다.


내가 정의하는 공부란, 스스로의 의지로, 스스로 세운 기치에 맞춰,

마음과 기예와 더불어 육신을 강건히 단련하는 것으로, 삶의 기본에 해당한다. 

즉, '수동성'이 발 붙일 곳은 없으며, 

또한, 세운 목표를 실현해 감에 있어, 좋은 학교 좋은 회사보다, 

좋은 사람과 의미있는 실질적인 가치를 만들어 가는 것이 중하기에 

'명함과 직함의 편리성'은 내가 있을 곳을 정하는데 있어 상대적인 우선 순위가 떨어진다.

또한 내가 '일'이란 주어진 문제를 대하고 처리하는 태도를 정의하는 이상의 것이 아니다.


질물을 바꾸어야 하겠다.

사회적 프로토타입 - '공부'라는 단어에서 느껴지는 수동성과 명함과 직함의 대화 편리성 - 을 반영하는 

"어느 회사에서 무슨 업무을 맡고 있느냐?"

"어디 학교에서 무슨 전공을 공부 하느냐?"

와 같은 질문들이 사회 전반에 야기하는 역효과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설령 질문을 바꾸지는 않더라도 - 질문이란 대게 질문자의 머릿 속 우선 순위를 반영하는 것이기에 -

순서를 바꿔야 할 필요가 있음는 분명하다. 

"일생에 걸쳐 실현하고 싶은 가치가 무엇인지?"

"(그 가치 실현을 위해) 어떠한 삶의 방식과 태도를 가지고 살아가고 있는지?"

와 같은 질문들이 지배적인 것이 된다면 

직장인들이, 그리고 학생들이 그들의 인생을 설계하고 준비해 가는데 있어 고려하는 우선 순위가, 

조금은 달라지지 않겠나.


XX 회사에서 XX 업무를 수행했으며, XX 학교에서 XX 전공을 공부했다는 결과론적인 것이어야 하는 이야기 보다,

그 학교와 전공(회사와 업무)에 무슨 목표를 가지고 입학(입사)했으며,

그 곳에서 목표한 준비에 맞춰 한 단련을 바탕으로 나와서 

현재 무엇을 어떻게 해가고 있고 앞으로 어찌 해나갈 것인지가 더 중요한 것임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고단하고 바쁜 세상에서, 그 부분을 먼저 짚어 묻는 이는, 혹은 묻기라도 하는 이는 많지 않다.

무심코 던지는 질문이라도 공론화된 상식의 반영은 때론 그릇된 기준을 제시하고 그 이상 그릇된 결과로 이어지기도 한다.


공부와 일을 가려 묻는 질문, 아니, 가려 생각하는 상식 이전에, 

알고 있는 본질을 개개인의 사고와 입에 담아 나눌 수 있는 사회 문화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