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열한 거리'라는 영화에서 조인성은 조폭 중간보스 역할을 연기하며, 

'식구'를 '끼니를 같이하는 사람'으로 정의한다.

그리고 그 '식구'인 자신의 보스를 칼로 찔러 살해하고, 

마지막에는 '식구'인 부하 조직원들의 칼에 목숨을 잃는다.

'식구.' 이 아름다운 단어를 정의하고, 또 그 '식구'인 부하 조직원들과 함께 식사하는 장면이

영화 전체에 흐르는 무상감과 축축한 씁쓸함을 극대화 시키는 극적 장치로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와 같은 일은, 비록 그 손에 칼이 쥐어지지는 않았더라도, 

많은 사람들이 매일의 일상에서 반복적으로 겪는 리얼리티이기도 하다.

나 또한 유년시절과 청년시절, 필요이상의 빈도로 배신을 겪어야 했고, 

그 주체는 - 어찌보면 당연하게도 - 예외없이 그 '식구'들 중에 있었다.

때문에, 불행히도 난 스무살 이후로 한솥밥 먹는 이를 식구로 여겨본 적이 없다. 


시일이 상당히 지난 지금에서 돌이켜 보면, 

그리고 "내게 있어 식구란 무엇이고 무엇이었나" 스스로 질문을 던져보면, 

'끼니를 함께 하는 이'가 아닌, '끼니를 함께 굶어줄 수 있는 이'가 친구였고 식구였다.

그 한 명 한 명을 구하기 위해 해를 넘겨 사귀고 가슴을 나누었다. 


아무 것도 가진 것 없이 비참하던 시절, 

내게 손을 내밀어 주고 질책과 격려를 아끼지 않았던 ACES 가족들을 

해병 전우들과 더불어 평생의 동반자이자 식구로 여기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동시에 KDI에 대한 지독한 불신의 근원적인 이유 또한 여기에 있겠다.

위기와 어려움 속에 너무도 쉽게 비겁을 드러내 보이고 배신을 주저치 않았던,

상황이 나아지니 그제서 웃으며 손을 내미는 그들을 받아 담을 가슴이 내겐 없었다.


식구. 함께 굶어줄 수 있는 이.

하지만 단순한 의리를 넘어 신의를 다져 만난 이들. 

어느새 해가 여러번 지나고, 

그 이름들은 가슴 한켠 딱지 앉은 그리움이 되어 버렸다.